오토(auto) 2019. 2. 10. 00:23


 



































































선운사 동백꽃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 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김용택 시인의 '선운사 동백꽃'이란 시 한편을 막 읽었습니다.

가슴속으로 갈대숲에서 부는 찬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눈 속에 빨갛게 피어난 동백꽃이 눈앞에서 아른거립니다.


아마 여자에게 버림받고

맨발로 차디 찬 선운사 겨울 도랑물을 건너던 그 시절은

이 사내의 생애에서 가장 눈부신 시절이었을 테지요.


지금은 다른 여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추워진 겨울 날씨에 두꺼운 외투 깃을 세우며

부지런히 저녁 불빛이 켜진 집으로 향하는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사랑 때문에, 여자 때문에

영영 울 일이 없어진 세월의 흔적을 거울에 비추어 보며 

세파에 흔들리는 삶의 모습에 눈동자가 흐려지는 요즈음,

이 사내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눈물이 아니라

따스한 보리차 같은 위로겠지요.


이 시를 만난 오늘은 이 사내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랑 때문에,

여자 때문에 울 일이 없게 된 나 역시

세상사는 일이 문득 쓸쓸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