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동백꽃
선운사 동백꽃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 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김용택 시인의 '선운사 동백꽃'이란 시 한편을 막 읽었습니다.
가슴속으로 갈대숲에서 부는 찬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눈 속에 빨갛게 피어난 동백꽃이 눈앞에서 아른거립니다.
아마 여자에게 버림받고
맨발로 차디 찬 선운사 겨울 도랑물을 건너던 그 시절은
이 사내의 생애에서 가장 눈부신 시절이었을 테지요.
지금은 다른 여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추워진 겨울 날씨에 두꺼운 외투 깃을 세우며
부지런히 저녁 불빛이 켜진 집으로 향하는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사랑 때문에, 여자 때문에
영영 울 일이 없어진 세월의 흔적을 거울에 비추어 보며
세파에 흔들리는 삶의 모습에 눈동자가 흐려지는 요즈음,
이 사내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눈물이 아니라
따스한 보리차 같은 위로겠지요.
이 시를 만난 오늘은 이 사내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랑 때문에,
여자 때문에 울 일이 없게 된 나 역시
세상사는 일이 문득 쓸쓸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