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쓰는 인생
"빌려쓰는 인생"
정말 내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동안 잠시 빌려 쓸 뿐입니다.
죽을 때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나 라고 하는 이 몸도 내 몸이 아닙니다.
이승을 하직할 때는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내 것이라고는 영혼과 업보뿐 입니다.
영원히 가지고 가는
부귀와 권세와 명예도
빌려 쓰는 것이니
빌려 쓰는 것에
너무 가지려고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많이 가지려고 욕심 부리다
모두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대로 놓아두면 모두가 내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베풀면 오히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것이라고 집착하던 것들을
나 자신마저도 놓아버립시다.
모두 놓아버리고 나면
마음이 비워지고 나면
나의 빈 마음속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그것들은 이제 모두 내 것입니다.
아내의 얼굴, 절반은 남편책임
초점없는 큰눈, 입은 늘 열려있어 넋이 빠졌진것처럼 보이는 얼굴,
비쩍 여윈몸에 비칠비칠한 걸음, 이 즈음엔 한쪽다리까지 절뚝이신다.
언젠가부터 허술한 유모차를 끌고 거리를 뒤지며 폐 휴지를 줍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일흔 넷, 요즘 어르신들 늙는 속도로 보면 사실 그리많은 나이도아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여든도 넘어 보이신다.
늘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고 아는 척을 하기 때문인지 만날때마다 내게 껌을 건네신다.
작은것이지만 이것도 돈을들여 사셨을텐데싶어 낼름낼름 받기가 죄송해진다.
늘, 혼자 성당에 오시던 할머니가 어느 날부터 할아버지와 동반 하셨다.
홀로 성당에 나오실때에는 명랑한 얼굴로 이런저런 말씀도 잘 하시더니 할아버지랑 함께 오면서부터 부쩍 어두워지시고 자주 바보같은 모습을 보이신다.
난, 그 할아버지를 처음 뵈었을때 혹시 할머니의 아드님이신가 했다.
할아버지는 일흔여덟이라는 나이가 무색할만큼 정정하셨다.
혈혈한 눈빛에 건강해 보이는 안색 꼿꼿한 허리, 할머니와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할아버지는 미사 사간에도 자꾸만 할머니에게 퉁둥거리신다.
면박을 주거나 야단치시는 일이 잦아 눈살이 찌푸러질 때가많다.
자신의 아내를 많이 부끄러워 하는구나 하는게 느껴진다.
한날 미사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감기에 걸린 할머니가 자꾸 재채기를 하셨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짜증을 내면서 할머니에게 호통을 치셨다. (할아버지는 목소리가 크셔서 그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 노부부에게 집중 되었다)
할머니는 터져 나오려는 재체기를 참느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고통스러워 하셨다
이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성당에서 사라지셨다.
할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길거리에서 두 분이 눈에띌때가 있었다.
어떤날은 할머니 혼자 작은 손수레를 끌며 폐지를 줍는게 눈에 띄었다가 어떤날은 할아버지가 뒤에서 미는게 목격되기도 했다.
삶이 할아버지를 속였던것 같다. 할머니가 수시로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치매가 깊어졌던 것이다.
할머니가 집을 찾아오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자 할아버지는 할머니 목에 이름표를 만들어 걸어줬다.
누군가 거리를 배회하는 할머니를 보거든 집으로 연락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않고 박아놓았다.
하지만 손수레를 끌고나간 할머니는 밤이 이슥하도록 집을 찾지 모살때가 많아졌고, 평생 폼생폼사로 살았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동업자가 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폐지줍는 일은 그들 부부에게 유일한 생계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속수무책이었다.
암이 말기가 되도록 모르고 있다가 혼자서는 생존할 수도없게 된 아내를 버려두고 홀연히 먼길을 떠나가신 것이다.
할아버지의 장례미사가 있던 날, 배우자인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치매가 급속히 진행되어 자녀들이 치매전문요양원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달이나 흘렀을까
일생 천덕꾸러기처럼 살았던 할머니가 안쓰러워 몇몇이 할머니가 계시는 용양원엘 찾아갔다
그래도 익숙한 얼굴이라 그런지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시고 화들짝 반색하신다.
그러더니 큰소리로 이렇게 외치신다.
“할아버지 만나러 왔어?”
할머니는 당신의 남편이 이미 이승을 떠났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신 것이다.
할아버지는 늘 당신이 우선이었다. 가족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건 당신이 아예 돈벌이를 하지못해 지하 월세방으로 내려 앉고도 변함 없었다.
게다가 바람은 또 얼마나 많이피웠던지 자식들이 등을돌린 이유도 바로 할아버지의 독선과 아집, 바람기때문이었다.
그런 남편니지만 할머니는 죽는 날까지 남편 곁을 지켰다. 참 끈덕진 인연이다.
일생 잔신을 힘들게 했던 남편이지만 그래도 할머니에겐 기댈 언덕이었던걸까?
할머니는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몇 달도 채 안돼 고단한 삶을 마감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