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y 사진작품실.♬/--◈물방울,비(雨)

태풍9호 찬홈이 오던 날의 풍경

by 오토(auto) 2015. 7. 12.

 

 

 

 

 

 

 

 

 

 

 

 

 

 

 

 

 

 

 

 

 

 

남자가 말랑말랑 해질때...

 

 

 

왜 나를 떼놓고 가려 하냐고 물었다. 난데없다. 무슨 말인가? 거 참 이상도 하네. 그런데 시장에 가는 내내 등허리가

따갑다. 섭섭하고 실망스러워 하던 남편의 눈빛이 계속 따라오는 것 같다. 왜 날 떼놓고 가려 해? 왜,왜, 왜.....

 

시장에 가려던 참이었다. 다급하게 남편이 물었다.

"같이 갈까?"
거절하는데 1초도 안 걸렸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가급적 빨리 다녀와야 했으므로.

"아니. 혼자 갔다 올게."

"......."

그런데 저 표정은 뭐지? 몹시도 섭섭하고 실망스러운 얼굴이 아닌가. 그러한 잠시, 남편이 풀죽은 목소리로 묻는다.

"왜 날 떼놓고 가려고 해?"

당황하여 왜 그렇게 말하는지 묻지 못했다.

 

사실은 그날만 그랬던 건 아니다. 바빴다,  늘. 그러다 보니 남편과는 물론, 아이들 손 잡한들거리며 장을 보는 일

도 드물었다. 장보러 다닐 시간도 마땅치 않아 대부분 인터넷으로 장을 봤었다. 빠진 것이 있을 때나 당장 필요한 무

엇인가가 있때만 시장에 갔기 때문에 크게 무거울 것도 없었다. 습관처럼 혼자 다고 원체 재빨라 걸음걸음 바람

소리가 났다.  

 

느닷없이 왜 그런 말을 하지? 곰곰 생각했다. 필요한 것들을 사들고 집으로 오는데 불현듯 생각이 다.

아, 이 남자가 외롭구나.

 

 

 

 

 

남편 나이 마흔 일곱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과 더불어 누려야 하는 소소한 행복들을 놓칠 때가 많았다. 남편

는 더했다. 이런저런 봉사활동도 많았지만 거듭되는 남편의 실패로 삶을 잣는 물레가 몹시 분망했다. 점에 대

해 가족들이 충분히 납득한다고 믿었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수다를 떨거나 여느 여자들처럼 즐겁게 노느라 그러는

게 아니라는 이유로 나 또한 당당했다.

 

남편이 그 날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우린 계속 그렇게 살았을 지도 모른다. 남편이 외롭다는 걸 알고 나니 앞으로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도 금세 그려졌다. 그 때 이후로 난 남편을 떼놓지(?) 않았다. 어디든 동반하려고 한다.

시로 "같이 갈까?"를 물어주는 것이다. 남편과 함께여서 곤란한 자리가 아니라면 늘 함께다. 남편은  아내와 함께

라면 언제라도 좋다. "요이~땅"하면 장 달려나올 채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시장에 갈 때면 모든 짐을 남편이 도맡는데 그것도 기껍다. 아프다고 드러누웠다가도 바람 쐬러 가자고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후다닥 털고 일어선다. 아내와 함께 하는 것이 그저 즐겁고 기쁜 것이다.

 

마흔 일곱일 수도 있고 쉰일 수도 있으리라. 어쩌면 그날이 더 빨리 올 지도 모른다.

남자 나이 마흔 후반, 혹은 쉰 즈음, 남자가 말랑말랑해질 때.

 

마음이 말랑해진 남편의 손을 따뜻히 잡아 주었다. 당신 만나 이 모양 이꼴로 살았다며 원망하지 않았다. 왜 그 나이

먹도록 똑바로 서지도 못하냐며 타박하지 않았다. 과거, 그가 잘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 조목조목 비판하거나 단죄

하지도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덥석, 그의 손을 잡았을 뿐이다. 그런 다음, 우린 나란히 함께 걷고 있다.

 

 

 

 

 

여자 나이 마흔 후반, 혹은 쉰 즈음

 

그 나이의 여자들은 대부분 혼자이고 싶어한다. 아이들 키우느라 몸서리쳤었다.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며 아내

부르는 남편의 소리도 지겨워질 수 있는 나이다. 다 떼놓고(?) 나가 친구들이랑 어울려 질펀하게 놀아도 보고 싶

어디론가 훌쩍 떠나도 보고 싶을 나이다. 그런데 젊은 날, 밖에서 즐거웠던 남자들은 집으로 들어오고 싶어한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봤던 것들이 크게 의미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수도 있고, 바깥생활에 충실(?)하느라 놓쳤

던 소중한 행복을 되찾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내 가정밖에 없다는 아주 원론적인 이유 때문일 수도 있

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왔으니 당연히 아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내는 돌아온 남편을 반기지 않는다. 설령 남편을

두고 밖으로 싸돌아다니지 않더라도 남편과 함께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더러는 함께 하는 일에 익숙치 않기 때문

일 수도 있겠다.

 

행복하리라 굳게 믿어 결혼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가 않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것

을 수용하지 못하고 각자 섬이 되어 외롭다. 아예 방을 따로 쓰거나 통장 관리를 각자 하는 경우도 있고 무늬만 부부

채로 살아가는 부부도 많다. 물론 다들 곡절은 있다. 나름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을 것이다. 하지

만 어느 순간, 상대의 손을 놓아버리고 서로 다른 길에서 정처없이 헤맨다.

 

마흔 일곱, 혹은 쉰 즈음, 마음이 말랑해진 남자는 다시금 돌파구를 찾는다. 가정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해보고 싶

어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아빠를 반기지 않고, 마음이 돌처럼 굳어버린 아내는 남편의 귀환이 진심으로

반갑다.

 

그런데 이 때가 기회다. 여편네나 아줌마가 아니라 황후가 될 수 있는 기회, 죽는 까지 남편이 나만 바라보게 할 수

는 기회, '남 편'아니라 온전히 '내 편' 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 놈 만나 내 인생 깡통처럼 우그러졌다고 한탓해봤자 나만 불행해진다. 그 놈 만나지 않았더라면 팔자가 꽃처

을 것 같지만 더 고약한 놈 만나 모질게 고생하며 살았을 지 누가 알겠는가. 

 

과거는 묻지 마시라. 현 시점에서 어찌 해야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 그것만 생각해야 한다. 함께 살아야 할 날이 40년,

50년이라면 서로 원수처럼 사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가.

 

 

~~ 내 남없이 ~~

굄돌님 글옮김

행복한 세상을 꿈꿉니다.

 

'♬.My 사진작품실.♬ > --◈물방울,비(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기예보없던 광복로의 흰눈거리  (0) 2015.11.29
비누방울 놀이  (0) 2015.08.27
하동계곡 작은 폭포  (0) 2014.09.04
참이슬  (0) 2010.07.02
혼돈  (0) 2010.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