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누림영상방
- 실버 독립영상제작 에 따른 스토리 소재발굴 제출건에 대한 대화 중
<폰으로찍은 동영상 임>
사상구 다누림 영상방엔 일주일 1번 영상촬영 교육을 받는다.
실버 영상제에 10분분량의 독립영화를 손수 촬영 편집하여 년말 제출해야한다.
그러기위해선 소재 발굴이 우선이다.
실버들의 생활상등 여러 소재를 활용하여 촬영에 임해야 하는 것 이다.
시간이 없다.
그래서 소재의 글들을 여기에 모아본다
참고하여 시나리오작업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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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그 끈덕진 애증에 대하여
촛점없이 큰 눈, 입은 늘 열려 있어 넋이 빠진 것처럼 보이는 얼굴, 비쩍 여윈 몸에 비칠비칠한 걸음. 이즈음엔
한 쪽 다리까지 절뚝이신다. 언젠가부터 허술한 유모차를 끌고 거리를 뒤지며 폐휴지를 줍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일흔 넷, 요즘 어르신들 늙는 속도로 보면 사실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여든도 넘어보이
신다. 늘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고 아는 척을 하기 때문인지 만날 때마다 내게 껌을 건네신다. 작은 것이지만 이
것도 돈을 들여 사셨을 텐데 싶어 낼름낼름 받기가 죄송해진다.
늘 혼자 성당에 오시던 할머니가 어느 날부터 할아버지와 동반하셨다. 홀로 성당에 나오실 때에는 명랑한 얼
굴로 이런 저런 말씀도 잘하시더니 할아버지랑 함께 오면서부터 부쩍 어두워지시고 자주 바보같은 모습을 보
이신다.
난 그 할아버지를 처음 뵈었을 때 혹시 할머니의 아드님이신가, 했다. 할아버지는 일흔 여덟이라는 나이가 무
색할 만큼 정정하셨다. 형형한 눈빛에 건강해 보이는 안색, 꼿꼿한 허리......할머니와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할아버지는 미사 시간에도 자꾸만 할머니에게 퉁퉁거리신다. 면박을 주거나 야단치시는 일이 잦아 눈쌀이 찌
프려질 때가 많다. 자신의 아내를 많이 부끄러워하는구나, 하는 게 느껴진다.
한 날 미사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감기에 걸린 할머니가 자꾸 재채기를 하셨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짜증을
내면서 할머니에게 호통을 치셨다.(할아버지는 목소리가 크셔서 그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 노부부에게 집
중이 되었다.) 할머니는 터져 나오려는 재체기를 참느라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고통스러워하셨다.
언젠가 썼던 <아내의 얼굴, 절반은 남편 책임이다>의 일부 내용이다.
골목에서 만난 어떤 노부부 모습
허리가 굽고 다리마저 고장 난 아내는 유모차에 몸을 의지하고도 균형을 잡지 못했다. 늙은 남편은 이런 아내
를 위해 유모차 옆에 막대기를 달아 아내가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탠다. 그런데 부부가 참 대조된다.
남편은 저렇게도 꼿꼿하지 않는가.
노부부의 모습이 글 속의 할머니 부부와 자꾸 오버랩된다. 머리카락은 비록 하얗게 쇠었지만 아내가 아니라
어머니라고 해도 전혀 의심하지 않을 것 같다.
이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성당에서 사라지셨다. 할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길거리
에서 두 분이 눈에 띌 때가 있었다. 어떤 날은 할머니 혼자 작은 손수레를 끌며 폐지를 줍는 게 눈에 띄었다가
어떤 날은 할아버지가 뒤에서 미는 게 목격되기도 했다. 삶이 할아버지를 속였던 것 같다. 할머니가 수시로 길
을 잃었기 때문이다. 치매가 깊어졌던 것이다.
할머니가 집을 찾아오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자 할아버지는 할머니 목에 이름표를 만들어 걸어줬다. 누군가 거
리를 배회하는 할머니를 보거든 집으로 연락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박아 놓았다.
하지만 손수레를 끌고 나간 할머니는 밤이 이슥하도록 집을 찾지 못할 때가 많아졌고 평생 폼생폼사로 살았던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동업자가 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폐지 줍는 일은 그들 부부에게 유일한
생계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속수무책이었다. 암이 말기가 되도록 모르고 있
다가 혼자서는 생존할 수도 없게 된 아내를 버려두고 홀연히 먼길을 떠가신 것이다. 할아버지의 장례미사가 있
던 날, 배우자인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치매가 급속히 진행되어 자녀들이 치매전문요양원으로 보냈
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 달이나 흘렀을까. 일생 천덕꾸러기처럼 살았던 할머니가 안쓰러워 몇몇이 할머니가 계시는 요양
원엘 찾아갔다. 그래도 익숙한 얼굴이라 그런지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시고 화들짝 반색하신다. 그러더니 큰소
리로 이렇게 외치신다.
"할아버지 만나러 왔어?"
할머니는 당신의 남편이 이미 이승을 떠났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신 것이다.
할아버지는 늘 당신이 우선이었다. 가족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건 당신이 아예 돈벌이를 하지 못해 지하 월
세방으로 내려 앉고도 변함이 없었다. 아무리 사는 게 어려워도 당신 입성은 늘 말끔해야 했고 누구 앞에서도
굽신거리면 큰일나는 줄 알았다. 게다가 바람은 또 얼마나 많이 피웠던지. 자식들이 등을 돌린 이유도 바로 할
아버지의 독선과 아집, 바람기 때문이었다. 그런 남편이지만 할머니는 죽는 날까지 남편 곁을 지켰다. 참 끈덕
진 인연이다.
일생 자신을 힘들게 했던 남편이지만 그래도 할머니에겐 기댈 언덕이었던 걸까. 할머니는 할아버지 돌아가시
고 몇 달도 채 안 돼 고단한 삶을 마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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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 사이>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 이생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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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둔 남편 두고 제 살 궁리만 하는 아내 비난할 수 없는 이유
집을 한 채 샀다고 했다. 뜨악하다. 남편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왜 난데없이 집을 산 걸까? 더 크고 좋은 집으
로 이사하여 남편이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최후를 맞길 원하는 마음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뭘까?
"월세 받아 먹으려고요."
남편 사업체를 정리한 돈과 암 진단 보험금을 합하니 제법 돈이 됐다고 했다. 융자는 한 푼도 끼지 않고 온전히 현금
으로 샀기 때문에 자신이 버는 돈과 거기서 나오는 월세를 합하면 사는 데는 걱정 없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그 너머까지 상상한다. 조만간 그녀 남편의 부고는 날아올 것이고 사망 보험금도 제법 나올 텐데? 그러면 집 한 채를
또 살 건가? 현재 남은 돈도 있다고 했으니.
그녀의 남편은 지금 죽음의 문턱에 서 있다. 의료진은 그녀의 남편에게 어떤 처치도 해주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가 먹
고 싶은 것 실컷 먹고 부부가 함께 여행도 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말인즉, 이미 암세포가 온몸으로 퍼
져 속수무책이니 수술이나 항암치료로 시간과 돈을 허비하지 말고 죽음을 잘 준비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녀의 남
편은 퇴원 후 집에만 있다. 아내가 강제로 퇴원시킨 것도 아니고 최종선고도 의료진이 했으니 집에만 있든 어쨋든 아
내로서 떳떳하지 못할 건 없다. 죽을 사람은 죽는 것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그녀가 제 살 궁
리만 한다고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남편을 보내는 그녀의 태도가 못내 아쉬운 것이다.
전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녀의 얼굴은 늘 평온하다. 그런 모습을 보는 이웃들이 오히려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그리
고 집을 샀던 말던 남들이 관여할 일은 아니지만 그걸 꼭 그렇게 자랑삼아 떠벌여야 하는지. 또한 평생 고생만 하다
가 돌아가는 남편을 위해 무엇인가는 시도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크다. 한적하고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쉬게
하고, 의사 말대로 맛있는 것도 맘껏 사먹어 가며, 그가 자신의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남편의 3개월 선고를 받고 그녀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남편의 사업체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사업체를 정리한 돈과
암진단비를 합하니 집 한 채를 사고도 돈이 남았다. 그녀가 그 몇 가지 큰일을 마무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달포.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무척 빠른 행보다. 그녀에게는 죽어가는 남편보다 남은 가족들에 대한 대책이 시급했던가 보
다.
그런데 오랫동안 그들 부부가 사는 모습을 지켜봤던 사람으로서 그녀만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들은 어느 한 날
도 사이좋게 지내질 못했다. 툭하면 싸웠고 틈만 나면 상대방을 비난하고 헐뜯었다. 아이들 역시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부부가 사이좋게 지내지 못할 경우, 엄마와 밀착되어 있는 아이들은 부지불식간에 아빠를 나쁜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들 가족들에게는 남편이나 아빠의 죽음이 크게 애닯지가 않은 것이다.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죽자사자 일생 돈만 좇았다. 투잡도 마다하지 않았다.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누구
보다 근면성실했다. 돈돈돈 하다 보니 어느 새 쉰이 훌쩍 넘어 있었다. 그래도 그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주변을 챙
길 줄도 몰랐고 사람을 사귀려고도 하지 않았다. 문득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부자가 되면 그것도 저절로
해갈될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기다려주질 않았다. 죽음이 찾아온 것이다. 사람을 얻지 못했고 가족의 마음마저
얻질 못했으니 이보다 더 기막힐 일이 어딨을까. 황망할 것이다. 내가 뭘 잘못했냐며 분노하고 자신을 따뜻하게 대
하지 않는 아내가 원망스럽기 그지없다.
남 얘기가 아니다. 우리 역시 그녀의 남편 만큼은 아니더라도 돈을 번다는 이유로 가족과의 관계를 소홀히 여기고
정작 소중한 것들을 놓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가 만일 사는 동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자주 갖고, 내 고집대
로가 아니라 가족들의 의견을 물어가며 조화롭고 온유한 자세로 살았더라면 지금처럼 참담한 최후를 맞지는 않았
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죽음이 찾아오면 우린 돈을 더 많이 벌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의 가족이나 이
웃과 더불어 얼마나 기쁘고 보람되게 살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우리네 인생 마지막에 남는 건 사람과 사랑이
아니겠는가.
찾아오신 모든 분들께 노래 선물을 드립니다. 짧지만 의미심장한 노래지요. 오늘 하루도 아름답게 채색해 가시길....
당신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에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갈대가 하얗게 피고 바람부는 강변에 서면
해는 짧고 당신이 그립습니다
짧은 해 김용택 시/김정식 곡/김정식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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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말랑말랑해질 때
왜 나를 떼놓고 가려 하냐고 물었다. 난데없다. 무슨 말인가? 거 참 이상도 하네. 그런데 시장에 가는 내내 등허리가
따갑다. 섭섭하고 실망스러워 하던 남편의 눈빛이 계속 따라오는 것 같다. 왜 날 떼놓고 가려 해? 왜,왜, 왜.....
시장에 가려던 참이었다. 다급하게 남편이 물었다.
"같이 갈까?"
거절하는데 1초도 안 걸렸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가급적 빨리 다녀와야 했으므로.
"아니. 혼자 갔다 올게."
"......."
그런데 저 표정은 뭐지? 몹시도 섭섭하고 실망스러운 얼굴이 아닌가. 그러한 잠시, 남편이 풀죽은 목소리로 묻는다.
"왜 날 떼놓고 가려고 해?"
당황하여 왜 그렇게 말하는지 묻지 못했다.
사실은 그날만 그랬던 건 아니다. 바빴다, 늘. 그러다 보니 남편과는 물론, 아이들 손 잡고 한들거리며 장을 보는 일
도 드물었다. 장보러 다닐 시간도 마땅치 않아 대부분 인터넷으로 장을 봤었다. 빠진 것이 있을 때나 당장 필요한 무
엇인가가 있을 때만 시장에 갔기 때문에 크게 무거울 것도 없었다. 습관처럼 혼자 다녔고 원체 재빨라 걸음걸음 바람
소리가 났다.
느닷없이 왜 그런 말을 하지? 곰곰 생각했다. 필요한 것들을 사들고 집으로 오는데 불현듯 생각이 났다.
아, 이 남자가 외롭구나.
남편 나이 마흔 일곱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과 더불어 누려야 하는 소소한 행복들을 놓칠 때가 많았다. 남편
과는 더했다. 이런저런 봉사활동도 많았지만 거듭되는 남편의 실패로 삶을 잣는 물레가 몹시 분망했다. 그 점에 대
해 가족들이 충분히 납득한다고 믿었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수다를 떨거나 여느 여자들처럼 즐겁게 노느라 그러는
게 아니라는 이유로 나 또한 당당했다.
남편이 그 날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우린 계속 그렇게 살았을 지도 모른다. 남편이 외롭다는 걸 알고 나니 앞으로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도 금세 그려졌다. 그 때 이후로 난 남편을 떼놓지(?) 않았다. 어디든 동반하려고 한다.
수시로 "같이 갈까?"를 물어주는 것이다. 남편과 함께여서 곤란한 자리가 아니라면 늘 함께다. 남편은 아내와 함께
라면 언제라도 좋다. "요이~땅"하면 곧장 달려나올 채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시장에 갈 때면 모든 짐을 남편이 도맡는데 그것도 기껍다. 아프다고 드러누웠다가도 바람 쐬러 가자고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후다닥 털고 일어선다. 아내와 함께 하는 것이 그저 즐겁고 기쁜 것이다.
마흔 일곱일 수도 있고 쉰일 수도 있으리라. 어쩌면 그날이 더 빨리 올 지도 모른다.
남자 나이 마흔 후반, 혹은 쉰 즈음, 남자가 말랑말랑해질 때.
마음이 말랑해진 남편의 손을 따뜻히 잡아 주었다. 당신 만나 이 모양 이꼴로 살았다며 원망하지 않았다. 왜 그 나이
먹도록 똑바로 서지도 못하냐며 타박하지 않았다. 과거, 그가 잘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 조목조목 비판하거나 단죄
하지도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덥석, 그의 손을 잡았을 뿐이다. 그런 다음, 우린 나란히 함께 걷고 있다.
여자 나이 마흔 후반, 혹은 쉰 즈음
그 나이의 여자들은 대부분 혼자이고 싶어한다. 아이들 키우느라 몸서리쳤었다.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며 아내를
부르는 남편의 소리도 지겨워질 수 있는 나이다. 다 떼놓고(?) 나가 친구들이랑 어울려 질펀하게 놀아도 보고 싶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도 보고 싶을 나이다. 그런데 젊은 날, 밖에서 즐거웠던 남자들은 집으로 들어오고 싶어한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봤던 것들이 크게 의미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수도 있고, 바깥생활에 충실(?)하느라 놓쳤
던 소중한 행복을 되찾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내 가정밖에 없다는 아주 원론적인 이유 때문일 수도 있
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왔으니 당연히 아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내는 돌아온 남편을 반기지 않는다. 설령 남편을
두고 밖으로 싸돌아다니지 않더라도 남편과 함께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더러는 함께 하는 일에 익숙치 않기 때문
일 수도 있겠다.
행복하리라 굳게 믿어 결혼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가 않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것
을 수용하지 못하고 각자 섬이 되어 외롭다. 아예 방을 따로 쓰거나 통장 관리를 각자 하는 경우도 있고 무늬만 부부
인 채로 살아가는 부부도 많다. 물론 다들 곡절은 있다. 나름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을 것이다. 하지
만 어느 순간, 상대의 손을 놓아버리고 서로 다른 길에서 정처없이 헤맨다.
마흔 일곱, 혹은 쉰 즈음, 마음이 말랑해진 남자는 다시금 돌파구를 찾는다. 가정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해보고 싶
어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아빠를 반기지 않고, 마음이 돌처럼 굳어버린 아내는 남편의 귀환이 진심으로
안 반갑다.
그런데 이 때가 기회다. 여편네나 아줌마가 아니라 황후가 될 수 있는 기회, 죽는 날까지 남편이 나만 바라보게 할 수
있는 기회, '남 편'이 아니라 온전히 '내 편' 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 놈 만나 내 인생 깡통처럼 우그러졌다고 한탓해봤자 나만 불행해진다. 그 놈 만나지 않았더라면 팔자가 꽃처럼 폈
을 것 같지만 더 고약한 놈 만나 모질게 고생하며 살았을 지 누가 알겠는가.
과거는 묻지 마시라. 현 시점에서 어찌 해야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 그것만 생각해야 한다. 함께 살아야 할 날이 40년,
50년이라면 서로 원수처럼 사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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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도리 실천하며 사는 어느 부부가 아들에게 보낸 메일,
남편은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한다.
그리고 엄마를 침대에서 일으켜 휠체어에 태우고 약들 챙겨 드시게 하고 아침식사를 준비해 드린다.
씨리얼에 빠나나랑 견과류 넣어 드리고... 계란 프라이도 해 드리고...
늦게 자는 데다 한밤 중에 엄마 시중도 하는 나에게 아침에 늦잠 자게 하려고 열심히 도와준다.
우리 엄마는 치매이시다. 치매전문 요양원 광고를 보니 집에서 모시는것 보다 전문가들이 있는 요양원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마침 별 다섯 개 오성짜리 요양원에 자리가 나서 엄마를 보낼 때 참으로 기뻤다. 꼭 복권을 맞은 것
같았다. 엄마가 그곳에 5개월 계신 동안 보니 요양원이 광고와 너무나 달랐다. 엄마가 그곳에 계속 계시면 얼마 안 돼
나도 못 알아보는 식물인간으로 변하실 것 같아 부랴부랴 집으로 모셔왔다. 집으로 모시고 와서 이곳 노인전문 의사
와 의논해서 요양원에서 잡수시던 우울증약, 치매약, 진통제등 10여 가지 약들 다 끊으니 심하던 기침도 멎고 엄마의
상태도 아주 좋아지셨다.
엄마가 요양원에서 집으로 오신지 2년 5개월. 아기같이 변한 엄마가 집에 계시니 매일 웃을 일도 많고... 엄마 땜에
남편과 대화도 더 많이 하게 되어 집안 분위기도 훨씬 화기애애해졌다. 나는 내가 엄마를 보살필 수 있을 때까지 집
에서 보살펴 드리려고 한다.
엄마한테 오늘이 추석이라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추석이 뭐하는 날인지 물으셨다.
"추석이 뭐하는 날이죠?"
"추석은 송편 먹는 날이에요"
라고 일깨워 드렸다. 요즈음 밥상 앞에서도 잡수시는것 잊어버리시고 멍하니 앉아계셔서 숫가락을 쥐어드리고 먹
여드리고 하는데 떡을 잘 잡수셔서 참 좋았다.
대문 열고 엄마께 달을 보여드리면서 "달 달 무슨 달 쟁반같 이 둥근달" 했더니 엄마가 "어디 어디 떴나 남산위에
떴지." 뒷구절을 노래하신다. 얼마나 신통한지 남편이랑 막 박수를 쳐 드렸다.
너희들과 할머니 생일에 대해 의논하고 싶다. 할머니가 점점 건강이 안 좋아지시고 이제는 밥상 앞에서도 잡수시
는 것도 잊어버리시곤 한단다. 할머니가 우리를 이만큼이라도 알아보실수 있을 때, 작은 생일파티를 열어드리고 싶
다. 바쁜 너희들이 우리집까지 오면 시간이 많이 소비되니까 우리가 너희 집 중간에 있는 필라델피아로 갈께. 좋은
호텔이랑 식당을 찾아서 그곳에서 생일 파티를 하자.
나는 할머니가 세상 떠나시기 전에 우리가 얼마나 할머니를 사랑하는지 알려드리고 싶고 또 할머니가 우리 가족을
위해서 헌신 봉사해 주시고 희생해 주신 것에 감사드리고 싶다. 너희 아빠의 엄마는 너무 갑자기 돌아가셔서 사랑
의 표현도, 또 감사의 말씀도 드리지 못해 늘 너무나 마음이 아프단다. 만약 다른 날 하고 싶다거나 혹은 더 좋은 생
각이 있으면 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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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 할머니는 왜 자살했을까?
궁전아파트의 할머니 한 명이 자살을 했다. 궁전아파트는 살기 편하고, 시설이 고급이고, 환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아파트이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물건은 물론 외국에서 들어온 물건까지 없는 것 없이 갖춰 놓은 슈퍼마켓도 있고
널찍한 놀이터도 있고, 아름다운 공원도 있으며 푸른 연못도 있다. '궁전아파트에 산다'고 하면 사람들의 얼굴은 부
러워하는 빛이 역력해진다. 궁전아파트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벌써 두 번째 자살사건이 일어났다.
당황한 궁전아파트 입주자들은 자살한 사람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가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면 자살을 막
을 수 있을 것인지, 대책마련에 고심한다. 혹여 자살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소문으로 인해 아파트가 '똥값'이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한 날 밤, 주민 대책회의가 열렸다. 장소는 70평 짜리 아파트 두 채를 터서 쓰는 사장님 댁. 반상회 날보다 더 많은
주민들이 몰려 들었다. 여기에 아주 조그마한 어린이 한 명이 끼어있다. 엄마를 따라간 아이다. 좋은 의견이 있으
면 기탄없이 말해달라는 회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저요, 저요.'하며 아이가 손을 번쩍 든다. 하지만 아이는
말 한 마디 못하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핀잔만 듣는다.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베란다에 견고한 쇠창살을 설
치하자.' '베란다 쪽으로 난 유리창에 새로운 자물쇠를 채우자.' 아이의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아이는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도 자살하려고 옥상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는 친구와 통화 중에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셋이란다. 창피해 죽겠다. 다들 하나 둘인데 나만 셋이라 창피해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단다. 어쩌다 군
더더기로 막내를 하나 더 낳아가지고 이 고생인지."
이 말을 들은 아이는 크게 충격을 받고 이렇게 판단한다. 아, 나는 가족이 필요한데 나의 가족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구나. 그동안 엄마의 사랑이 거짓이라고 생각한 아이는 옥상으로 올라간다. 죽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사람
들 눈에 덜 띌 수 있는 밤이 되기를 기다리는데 아이는 그곳에서 민들레꽃을 본다. 시멘트로 빤빤하게 발라 놓은
옥상 한 귀퉁이에 조그마한 민들레꽃이 피어 있었던 것이다. 흙이라고도 할 수 없을 만큼 한 줌의 먼지에 허겁지겁
뿌리를 내리고 눈물겹도록 노랗게 핀 민들레꽃을 보자 아이는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살고 싶지 않아 했
다는 사실이 큰 잘못같이 생각되었던 것이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고 가족들은 사라진 막내가 돌아오자 엉엉 울며 반긴다. 아이의 자살 시도 사건은 다시금
가족들의 사랑을 확인한 걸로 끝이 났지만 아이는 그 일로 인해 사람은 언제 살고 싶지 않은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가 없어져줬으면 할 때 살고 싶지 않아진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된 것이다.
박완서 작 <옥상의 민들레꽃>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올해 76세인 김할머니는 일요일마다 야채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신다. 할머니의 근무 시간은 아침 8시부터 오
후 7시까지. 무려 11시간이다. 가끔은 야채가게가 바쁠 때도 잠깐씩 일을 도와주러 나오신다. 팔순을 앞둔 노인이
무슨 돈을 벌겠다고 그 고생이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할머니는 늘 싱글벙글이다. 물론 돈을 벌어야 할 만큼 궁핍
한 건 아니다. 학교 선생님인 딸과 손자가 용돈을 충분히 주고 잘 사는 아들이 큰돈을 쥐어줄 때도 많아 할머니 호
주머니에는 돈이 마를 날이 없다. 통장에 쌓인 돈도 상당하다. 하지만 바쁜 사람 일손도 덜어주고 당신 소일거리
도 되기 때문에 할머니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 일을 계속하고 싶다.
김할머니에게도 궁전아파트에 살다 자살했던 할머니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사별하고 혼자 된 딸을 집으로 끌어
들여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던 할머니를 아들이 모시고 간 다음부터 자꾸만 죽고 싶어진 것이다. 이들네 집은 한
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50평짜리 아파트였다. <옥상의 민들레꽃>에 나오는 궁전아파트만큼 넓은
평수는 아니지만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아들은 모 관청의 고위 간부였고 며느리 역시 공무원이라 용돈
도 넉넉했다. 하지만 김할머니는 좁은 집에서 딸네 식구와 북적대며 살던 때가 늘 그리웠다.
아이가 없는 아들네 집은 밤낮없이 적막강산이었다. 아들 며느리는 걸핏하면 외식이라 식사준비로 바쁠 일도 없
었고 어지를 사람이 없으니 치울 것도 없었다. 빈둥빈둥 놀며 하루를 보내는 게 무료했지만 며느리 눈치를 살피
느라 할머니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김할머니를 힘들게 하는 건 며느리였다. 대놓고 구박하는 건 아니
었지만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마주쳐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내가 이 집에 있는 걸 달가워하질 않는구나, 나
와 마주앉아 밥도 먹고 싶지 않구나, 하는 걸 깨닫기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문득문득 죽고 싶었다. 자신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사실도 견디기 힘들었고 싸늘한 며느리의 얼굴을 보는 건 더더욱 고역이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을 때 딸이 나섰다.
"난 엄마가 필요하다. 내가 엄마를 모시고 가겠다."
아들이 펄쩍 뛰었다.
"지금 모시고 가면 엄마가 똥오줌 못 가려도 끝까지 책임져라."
아들에게는 자신의 체면이나 '아들로서의 도리'가 중요했다. 어떻게 했길레 어머니가 다시 딸네 집으로 갔느냐
는 식의 의구심서린 눈길을 받게 될까봐 걱정이었다. 그래서 아예 자신의 여동생에게 못을 박았던 것이다.
그렇게 돌아온 김할머니는 지금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다. 비록 아들네처럼 고급스런 집은 아니지만 발 뻗고 잘
수 있는 내집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며, 나를 반겨주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방 냉장고는 늘 그분이 즐기시는 음식으로 가득 채워졌고, 옷장엔 사시사철 충분히 갈아입을 수 있
는 비단옷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신 후 그걸 양로원에 기부했는데 열 사람의 노인네가 돌아가실
때까지 입을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궁전아파트에 살다 자살한 할머니의 며느리가 주민회의에서 했던 말이다. 시어머니가 자살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사람을 살고 싶지 않게 하는 건 민들레꽃을 발견한 다음 죽고 싶었던 마음을 거둔 아이
말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없어져 줬으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거나 자신이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이다.
돈이 최고이고 돈만 있으면 못할 게 없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세상엔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가치들이 있다. 이웃이나 가족 간의 관심과 사랑, 생명에 대한 경외심, 인간적인 정만이 우릴 물질만능주의라
는 망령에서 구해낼 것이다.
******************************
낙화 / 이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 터에 물 고인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새벽별 / 박노해
문득 밖을 보니
창너머 산그림자 위에
홀로 웃는 환한 새벽별 하나
어둔 밤 지나고 새벽이 온다고
가장 먼저 떠올라
새벽별
아니예요
뭇 별들이 지쳐 돌아간 뒤에도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별
끝까지 돌아가지 않는 별이
새벽별이랍니다
새벽별은
가장 먼저 뜨는 찬란한 별이 아니랍니다
가장 나중까지 어둠 속에 남아 있는
바보 같은 바보 같은 별,
그래서 어둠이 깊어질 때 비로소 밝게 빛나는
희망의 별이랍니다
지금, 모든 별들이 하나 둘
흩어지고 사라지고 돌아가는 때
우리 희망의 새벽별은
지친 그대가 잠시 잠들어 쉴때
혼자 밤하늘을 성성하게 지키다
아침에 눈뜬
그대 밝은 미소를 보고서야
붉은 햇덩이에 손 건네주고
소리없이 소리없이 사라지는 거죠
앞이 컴컴한 언 하늘에
시린 첫마음 빛내며 떨고 있는
바보 같은 바보 같은
눈물나게 어리숙한
나는
당신의 새벽별
************************
빌려쓰는 인생
정말 내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동안 잠시 빌려 쓸 뿐입니다.
죽을 때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나라고 하는 이 몸도 내 몸이 아닙니다.
이승을 하직할 때는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내 것이라고는 영혼과 업보뿐 입니다.
영원히 가지고 가는
부귀와 권세와 명예도
빌려 쓰는 것이니
빌려 쓰는 것에
너무 가지려고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많이 가지려고 욕심 부리다
모두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대로 놓아두면 모두가 내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베풀면 오히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것이라고 집착하던 것들을
나 자신마저도 놓아버립시다.
모두 놓아버리고 나면
마음이 비워지고 나면
나의 빈 마음속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그것들은 이제 모두 내 것입니다.
********************
간이역에서 / 김경 시 /
그대여,
이곳에서는 이별을 말하지 말라
우리가 오고가던 길 환하고 끝이 없는데
저렇게 반짝거리는데
무궁화호 새마을호 열차가 지나가며
철새들의 날개 죽지에 암각화를 긋는 가을 날
이별이거나 해후거나
플랫폼까지 들어와 핀 산국들 흔들어 놓고
어디쯤 울며 가는 무정한 기적소리
사람아, 사람아
백년쯤 기다려 줄 수 있겠는가
기차가 오는 쪽으로 기운 측백나무 몇 그루
옛 동무로 다가와 팔짱을
걸어주는 간이역
겹겹으로 멀어진 얼굴이 문득 떠올라
내내 그립고 그리워
아직 보내지 못한 내 사랑도
까마득하게 떠나가는구나
다만 저물 무렵이면
저녁이 별에게로 가는 길을 밝혀 든 간이역에서
곳곳이 어귀이며
출구인 간이역에서
이별을 말하지 말라
사람아, 사람아
************************
웬수같은 남편, 죽고 나면 속이 시원할까?
"우린 참 행복하게 살았어."
날마다 싸우고
누가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이 남편에게 면박 팍팍 주던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을 때
나는 하도 기가 막혀 고개를 돌려 웃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내가 잘 안다.
오랫동안 같은 공동체에서 일했고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으므로.
그런데도 행복하게 살았다니...
남편이 일찍 죽은 이유가 그녀 때문이라고 수군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런데도 행복했었단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거짓말하는 사람은 아닌데, 왜 저러지?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찌개집을 운영하는 미망인이 있다.
그녀는 지난 1월에 남편을 잃고 딸이랑 같이 살고 있다.
남편을 보낸 다음 어렵게 돈을 긁어 모아 찌개집을 냈는데 마침 장사가 잘 된다.
한 날, 어찌 사나 싶어 찾아갔더니 식당에 손님이 가득했다.
바쁘긴 하지만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내일처럼 기뻤다.
"힘들긴 해도 홀가분하시죠?"
"그렇지가 않아. 이렇게 마음이 허전할 수가 없어. 그래도 그 때가 좋았어."
그때가 좋다니.
어떻게 그때가 좋다는 생각을 다할까.
그녀의 남편은 돈을 벌어 본 적이 거의 없다.
결혼 초기에 잠시 직장생활을 했고 다음엔 사업을 벌였다가 쪽박을 찼다.
성격은 또 어찌나 난폭한지, 시시때때로 아내를 괴롭혔다.
그러다가 당뇨가 찾아왔고 다리가 썩어 들어가 결국 절단했다.
무릎 아래로 민둥한데 무엇을 하겠는가.
생계는 그녀가 식당에 나가 벌어들인 돈으로 꾸려 나갔다.
딸들은 아르바이트와 학자금 대출로 겨우겨우 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살아있는 동안 그 가정의 왕이었다.
그녀의 팔은 무쇠였다.
아니, 무쇠인양 살아야했다.
살기 위하여, 오직 살아가기 위하여....
어깨 관절이 닳아 일을 할 수가 없었는데도 우기고 식당에 나갔다.
그렇게 벌어 들인 돈은 이자와 빚 갚는데 다 나가고 그녀의 손은 늘 비어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죽을 것 같다는 전갈을 받고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위해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이 죽자 그녀는 날마다 통곡을 했다.
무슨 미련이 그리 남았을까.
그래도 남편이라고 저리 애통한 것일까.
모질었던 세월이 애통한 것은 아닐까.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다.
남편을 잃은 여자들은 함께 사는 동안 잘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아쉬워한다.
죽음은 아쉬움에 더욱 더 집착하게 만들고 남편의 가치는 죽은 다음에 더 커진다.
상실의 공간에 들어선 환상은 사람을 거짓말장이로 만든다.
말하자면, 행복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행복했었다는 환상을 불러오는 것이다.
죽음의 문 앞에 있는 여자들은 날마다 으르렁거리며 싸웠던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모두 당신 탓이었어. 내가 만일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난 훨씬 더 행복하게 살았을 거야."
(이 말은 이 세상 모든 남편들에게도 적용된다.)
남편의 못난 점, 나쁜 점만 바라보면 하루도 같이 못 산다.
내 남편이 지니고 있는 좋은 점은 없는지,
혹시 그 좋은 점들이 미움이나 원망에 묻혀지고 가려져 있는 것은 아닌지 두루 살펴봤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모두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이 말 역시 세상의 모든 남편들에게도 적용된다.)
'♬.My 사진작품실.♬ > --◈동영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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