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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春夏秋冬)♡]/♧...사계절국내휴가영상...♧

2박3일 휴가중

by 오토(auto) 2024. 8. 4.

 

 

울고 넘는 박달재

 

✨️천등산(天登山) 박달재✨️

천등산 박달재는 충청북도
제천에 있는 옛날에 한양을 오 갈때 넘던 산 재의
이름이다.

조선시대 고종때
영남 땅에 살던 박달((朴達) 이라는 젊은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개나리 봇짐을 지고 한양 천리 먼길을
가게 되었다.

날이 저물어 어둡기 전에
무인지경인 깊고 험한산
재를 넘어야 하기에 바쁜
걸음을 더욱 제촉 하여
재를 넘던 중 어둑한
산길에서 독사에 물려정신을 잃었고.....

마침내 지나가던
나무꾼이 발견하여
산마루에 있던 주막집으로
업혀가게 되었다.

주모와 딸 금봉이라는
아가씨가 정성껏 돌보아
다행이 다음날 정신이
돌아오고 살아 났으며

박달은 주막집 모녀가
생명의 은인으로 고맙게
생각하였다.

금봉이 아가씨와 두사람은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며칠 후 박달은 과거를 보기위해 한양으로 떠나게 되었고

돌아와 두사람이
혼례를 치룰것을 굳게
언약하고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금봉이는 비지 떡봇다리를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울면서 작별을 고하였고
언덕 위 소나무 아래에서
멀어 저 가는 박달을
바라보며 장원급제를 빌었다.

다시 오마 언약 한 박달은
야속하게도 소식이 없고
무심한 세월만 덧 없이
흘러갔다.

그후 박달은 몇번을 낙방
한 후 과거에 급제하여
한양에서 부자집 규수와
혼인을 하였고.....

십 수년이 지난 후
어느날 금봉이를 그리며
박달재 주막을 찾아 오니

한 예쁜 처녀가 나와
선비님은 뉘 신데 돌아가신 우리 어머님을 찾으시는지요 라고하였다.

처녀는 박달이 한양으로
떠난 후 태어난 박달과
금봉이의 딸 달래였다.

그러자 방문이 열리고 늙은 노파가 내다보며 박달을
알아보고.

이 무정한 사람아
올려면 진작에 오시지
금봉이는 자네를 기다리다
지처서 삼년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였다.

다음날 박달은 딸 달래와
함께 십 수 년전에 다시오마 다짐하고 한양으로 떠나던날
금봉이가 언덕 위 소나무
아래에서 멀어 저 가는
박달을 바라보며 울면서
손을 흔들어 작별 하던곳에

한양길을 바라보는 금봉이의 무덤을 찾아 한없이 한없이 울었고.

금봉이의 무덤과 주막이
있던 굽이 굽이 산길 재를
조선시대 고종때 부터
박달재 라고 하였다고 한다.

천등산 박달 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 마다 구비 마다
울었소 소리첬소 이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두고 가는님아
돌아올 기약 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없이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 ~~

그후 박달(朴達)은 한양에서 영남으로 오 갈적 마다
박달재를 울고넘어
박달재라 하였다.


아 ! ~ 박달재의
슬픈 사연이어라!

남자는 도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