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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春夏秋冬)♡]/♧...사계절국내휴가영상...♧

부산가덕도 외항포 일본군 포대진지

by 오토(auto) 2016. 7. 26.

눈을 감아도 마음으로 느껴지는 사람

 

 

 

 

 

 

 

 

 

 

 

 

 

 

 

 

 

 

 

 

 

일제침략의 흔적인 외양포 일본군 포대진지

 

러.일전쟁(1904~1905) : 만주. 한국. 동해에서 싸운 러시아(러시아.프랑스 동맹). 일본(英.日동맹)전쟁,

일본군이 고전 끝에 모두 승리하며, 러시아는 패전으로 군대의 반란, 농민폭동(제1차 혁명)이 일어 났고,

일본은 전승에 의해 한국에 한일의정서를 강요하여 한국의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 알선으로 포츠머스 강화회담과 을사보호조약으로 이어져 한국은 주권을

일본에 거의 빼앗긴데 이어 망국의 운명을 맞게 되었다.

이후 일본은 만주진출이 확정되었으나 미국과의 대립이 시작되었고,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 되었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이곳에 군사시설을 대대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하여

4개월 만에 포진지와 막사 등을 완공하였다.

1904년 12월 진해만 요새 포병대대 제2중대가 주둔하게 되고,

1905년 4월 일본군 4사단에 진해만 요새사령부가 편성되어 대대급 이상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1909년 8월 포대사령부는 마산으로 이전했으나, 요새사령부는 태평양전쟁 패망직전까지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외양포에는 옛 헌병대 막사, 장교. 사병막사, 창고, 포진지, 탄약창, 우물 등 일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 곳 건물 전체가 일본군 막사와, 탄약창 건물로 현재 해군지역으로 민간인이 건물만 임시 사용함.

 

 

 

 옛 일본군 막사 

옛 일본군 헌병대 막사

 옛 일본군 헌병대막사

 

 옛 탄약고

전체 건물 20동에 30세대가 매년 사용료를 내고 살고있음.

 

 

 

 

 

 

 

 러.일전쟁시 일본군이 먹던 우물터

한 집에 두가구가 거주, 서로 의견이 안맞아 페인트 칠도 각각...

 아직도 먹는 우물

 먹는 물...

원형 그대로 보존된 우물터

 

 일본군 요새사령부 건립비 

 철저한 위장으로 태평양전쟁시 미국의 공습을 피한 곳...

 이곳 대항에 포진지가 무려 8곳이나 있었다니..

 

 

 

 

 

 

 이렇게 입구를 막아 놓았으나, 내부엔 지하 방커까지 있다고 한다..

대나무숲으로 위장한 포진지..

 

 

 

 

계단에 올라 내려다본 포진지..

일제의 만행으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선조들의 영령들이시여.

부디 극락왕생하소서....

얼마전

아직도 억울한 영령들이 엉엉 울부짖으며 구천을 떠돌고 있다고 방송에 나왔다 한다.

 

 

 대항 인공동굴 : 세계 제1,2차 대전 당시 가덕도를 점령한 왜군들이 연합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적기의 공습을 대비하여 여러곳에 판 인공동굴, I자, T자, 연결복식동굴 등이 있다.

현재 대항마을 앞 천성만 쪽 해안절벽에 10여개와 새바지 마을 앞에도 동굴이 있고,

외양포 마을 뒷산 정상을 중심으로 몇 개의 인공동굴이 있는데

넓이와 높이는 1.5,~2m정도이며, 길이는 10~15m정도로 규모는 거의 비슷하다. 

 

들여다본 굴내부..

 

 

얼마나 많은 조상들이 희생을

당 하였을꼬....

 

진해 만 요새 외양 우라 포대는 러일 전쟁 때 일본군이 가덕도에 쌓은 포대입니다

 

 

 

(클릭으로 확대)

 

제주 올레 10 코스에는 알뜨랑비행장 이 있습니다.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비행장이죠.

그 길을 지나며 많은 생각들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뒤 부산을 소개하는 사진집에서 외항포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부산에도 그런곳이 남아있다는것에 신기하게 여기고 말았는데, 이번 여행으로 그곳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외항포는 부산 가덕도 제일 안쪽에 있는 작은 어촌마을 입니다.

일본군 포진지와 막사, 창고등 일본군이 주둔한 흔적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곳입니다.

마을 전체가 일본군 주둔 당시 모습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데에는 이곳이 해군 지역으로 건물만 주민분들에게 임대해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을에 들어서자 마자 만날수 있는 흔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우물인데 기둥과 지붕등 이국적이 정취가 묻어 있습니다.

마을 안쪽에 비슷한 모양의 우물들이 서너개 정도 더 있습니다.

 

 

 마을 집들은 대부분 저런 모습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집은 한집에 두 가족이 거주하였는데 두 가족의 취향 문제로 두가지 색깔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쁜 뜰을 가진 집입니다.

아픈 역사의 한자락입니다만.... 아름답긴 합니다.

 

 

 대부분의 집들이 옛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지붕만은 새로 작업한 모습들입니다. 

 

 

 다른분 사진에는 분명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굴뚝 안쪽에 벌이 집을 지은듯합니다. 그 간에 불을 지피지 않았는지.......

 

 

 마주보고 한참을 않아있었지만 관심이 없는지 한번도 짖어주지 않던 무심한 견공 입니다.  사진에도 도도함이........

 

 

 일분군 포진지 입구입니다. 안쪽으로 포를 설치했을법한 구멍의 흔적이 6개 정도 있고 창고나 화약고 등으로 사용했을법한 방들이 몇 있습니다.

 

 

 창문처럼 보이는 작은 아치들은 포격시 소리를 줄인는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콘크리트 구주물 안쪽으로 작은 방들이 몇 있고 구조물 위쪽은 흙더미를 쌓아올려 외부로부터 안보이게 위장을 해 놓았습니다. 그 위에 대나무와 갈대 등을 심어 바다쪽에서 보면 전혀 알아 채지 못했을듯 합니다.

 

 

 포대 에서 바라본 마을 모습입니다. 지금은 그저 평화롭기만 합니다.

 

 

 

 당시에 도색된 모습인지 페인트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습니다.

 

 

 

 저러지 맙시다.TT

 

 

 

 

 진지 언덕위에 벌통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한참을 바라보다 문득 어린시절 기억을 하나 꺼집어 내었습니다.

열댓살 정도 되었을 겁니다.

한살 어린 사촌동생이랑 마을 뒷산에서 놀다 무덤 귀퉁이에 벌집을 발견하였습니다.

땡삐라고 하죠 흙속에 집을 짖는 땅벌의 집이였습니다.

얼마나 들낙거렸는지 구멍 입구가 반들반들해져 있었습니다.

사촌동생과 저는 그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고 벌들이 어떻게 들낙거리는지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구멍안에서  기어나온 벌은 반들거리는 입구에 잠시 서서 날개를 촥 펴고 한번에 윙~ 하고 날아 올랐습니다.

그 모습이 신기해 발로 땅을 구르며 더 많은 벌들을 불러 내었습니다.

그게 화근 이었습니다.

한참뒤 구경하는 것에 지쳐 갈 때 쯤 벌집에서 눈을 돌렸을때 주위에 온통 벌들이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당황한 우리는 아래쪽 100 미터 정도 뛰어서 도망을 쳣지만 사촌동생은 이미 두어방 쏘인 뒤였습니다.

사촌동생보다 행동이 굼뜬 저는.............................한방도 쏘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는 벌에쏘여 고통스러워하는 사촌동생을 보며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그 뒤로도 쭈욱........ 벌에 쏘인적은 없습니다. 

 

 

 사과꽃인듯 합니다. 작은 텃밭들이 집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들인데 작은 땅 이라도 한군데 허투루 사용하고 있는곳이 없었습니다. 텃밭이라고는 하지만 온통 자갈천지여서 작물들이 제대로 자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사유지가 아니라고 하니 작은땅이라도 알뜰하게 사용할수 밖에 없었을듯 합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울에는 어느새 올챙이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일본군 막사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라고 합니다.

양철 외벽으로 겨울에 얼마나 찬기운이 스며들지..... 마을 전체 건물들이 겨울에는 상당히 추울거 같단 생각을 했습니다.

 

 

 

 

 

 마을 뒷쪽으로 보이는 길이 유일한 진입로 입니다만.... 마을분들은  고개 너머 대항 마을까지 주로 배를 이용 하시는듯 합니다. 등산객들과 낚시꾼들이 주로 많이 찾아오시는듯 합니다. 인근 부산, 김해, 창원 분들은 드라이버 코스로 괜찮을듯 합니다. 가슴아픈 역사의 잔재이긴 합니다만 이국적인 정취에 잠시 휴식이 되는 여행이 될듯 합니다.

돌아오는길에 벽화마을이 있다고해서 정거마을에 잠시 들렀습니다.

정거마을은 가덕도 신항만쪽에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눌차도 안쪽에 있는 어촌마을입니다.

전문벽화 업체에서 만든 벽화라서인지 통영의 동피랑에서 봐 오던 벽화와는 좀 다른 느낌입니다

 

 

현재 일본 통치 시대(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라는) 것은 일제 잔재라고 불리며 건물은 파괴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이곳은 지금도 당시의 모습을 그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