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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글과 영상

접시꽃 당신 ... 도종환

by 오토(auto) 2010. 6. 17.

             접시 꽃 당신

 

                                                  시인. 도 종환

 

옥수수 잎에 빛방울이 내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날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가 크기엔 아직 많은 날들을 기다려야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 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큰약 한 번 써 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 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함부로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 들여야 할 남은 하루 하루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 안는 듯 주체할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 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 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  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슬퍼해야 합니다.

 

남은 날들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 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땜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 꽃 핀 얼굴을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 올릴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이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 갈 수 있는 사람게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나의 살의 어느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 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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