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힘들어요. 요즘은 갈피를 못잡겠어요."
며칠 전, 아는 이가 했던 말이다. 공연히 슬프고 쓸쓸하다고 했다. 쉰 살을 갓 넘긴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자녀들은 대충 다 컸고, 하는 일이 따로 있는 아내는 바쁘다는 이유로 남편 보기를 돌 같이 한다. 아내가 어
느 날 갑자기 자신을 그리 대했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흔들어 마음밭이 어지러워진 것도 아니
다.
한 때는 실패한 남편을 대신해 팔을 걷어 부친 아내가 한없이 고마웠었다. 또한 자신의 재능을 살려 열심히 일
하는 아내가 자랑스럽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내의 등을 바라보며 홀로 외로워졌다.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 놓아 보세요"
수없이 해봤단다. 하지만 바위처럼 입이 무겁고 착하기만 한 아내는 소리없는 웃음만 흘린다. 외출할 때 슬쩌
기 손이라도 잡을라치면 화들짝 놀라 손을 빼낸다.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평소 안하던 말이라도 건네면
왜 그러냐며 그를 무안하게 만든다.
"그 인간은 바람도 못 피울 거예요."
시집 식구들 문제로 남편과 담 쌓고 사는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장이라도 지질 태세였다. 바람
도 못 피우는 남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내 말에 그녀는 확신을 갖고 말했다.
"그렇게 융통성 없는 남자가 어떻게 바람을 피우겠어요?"
그런데 어느 날 뒷덜미가 잡혔다. 그녀의 남편이 다섯 살이나 더 먹은 여인과 바람이 났던 모양이다.
"나를 인정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그녀가 좋았다."
남편의 등짝을 후려치며 악다구니를 쓰는 아내에게 그가 했던 말이다.
시장에 가려던 내게 남편이 급하게 한 마디 한다.
"같이 갈까?"
"아니. 얼른 다녀 올게."
사는 일이 바빠 아이들 손잡고 능실능실 시장 가는 일도 제대로 못해 보고 살았다. 그런데 남편이랑 도란거리
며 시장을 가? 혼자 가면 후다닥 뛰어 갔다 올 텐데 뭐하러? 이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등 뒤에서 축 쳐진 남편
의 음성이 들린다.
"왜 나를 떼놓고 다니려고 해?"
왜 저러지? 저 사람이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남편을 떼 놓고(?) 나온 등이 자꾸만 뜨끔거렸다. 장을 보고 돌
아오는 길에 답을 얻었다.
아, 이 사람이 외로운 거로구나!
남편 나이 마흔 일곱 때의 일이다. 그때부터였다. 시장이든 어디든 꼭 혼자 가야 하는 곳 빼고는 남편과 같이
다니려고 한다. 남편은 아내가 어딜 가자고 하면 거절한 적이 거의 없다. 장에 다녀 오는 길엔 아내의 가방까지
들어준다. 가끔은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고 아이처럼 좋아한다.
허울만 부부인 사람들이 많다. 남편이 하는 일 아내가 모르고, 내 아내가 도대체 누구랑 어울리며 무엇을 하며
사는지 모르는 남편들이 많다. 각방을 쓰는 부부도 많고, 한 방을 쓰더라도 배우자의 발가락만 닿아도 움찔 놀
라는 부부도 많다.
우리는 모두가 외롭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허리가 휘도록 뒷바라지하며 키웠던 자식들은 저 혼자 큰 줄 안다.
진종일 입에 단내 나도록 살았던 남편의 마음 아내가 헤아려주지 않아 외롭고, 아이들과 투닥거리며 발바닥
에 불나도록 살았던 아내는 마치 집에서 놀고 있는 양 말하는 남편 때문에 외롭다. 자식도 귀하고 소중하지만
내 남편, 내 아내가 슬프지 않도록 조금씩만 마음 써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힘들지만 내 배우자도 그만큼
힘들다는 걸 알아주고, 내 남편(아내)이 다른 집 남편(아내)보다 조금 못났더라도 당신이 최고야, 라며 추켜주
고 토닥여 주면 먼 인생길, 얼마나 즐겁고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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